
2025년 들어 인공지능(AI) 하드웨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균형을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AI 전용 메모리 생산에 반도체 기업들이 집중하면서, 일반 소비자 기기용 칩의 공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HBM 생산 집중이 불러온 칩 부족의 원인과 산업적 영향, 그리고 향후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응 전략을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AI 시장 폭발과 HBM 수요 급증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량이 폭증하면서 HBM은 GPU 및 AI 서버용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HBM은 기존 DRAM 대비 대역폭이 월등히 높아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AI 모델 학습 및 추론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엔비디아, AMD, 인텔 등 주요 AI 하드웨어 기업들이 HBM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생산 라인을 AI 전용 메모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5월 2024년 HBM 물량이 모두 매진되었고 2025년 물량도 거의 매진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5년 3월에는 2026년 HBM 공급에 대한 고객과의 협의를 마무리 중이라고 밝혔으며, 2025년 10월 실적 발표에서는 2026년까지 DRAM, NAND, HBM 생산 물량이 모두 매진되었다고 확인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이 2023년 대비 2024년에 9배 성장했으며, 2025년에는 HBM 매출이 전체 메모리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 역시 2024년 3월 2024년 HBM 물량 대부분이 매진되었다고 발표했으며, 2025년 9월에는 DDR4, DDR5, LPDDR4, LPDDR5 제품군에 대한 모든 견적을 중단했습니다. 이 변화는 일반 스마트폰, 노트북, IoT 기기 등 소비자 제품용 표준 메모리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AI 기술 발전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동시에, 기존 IT 생태계에 '자원 쏠림'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모리 산업 내 구조적 수급 불균형
HBM 생산 확대는 산업 구조 자체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DRAM, NAND 등 범용 메모리가 전체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2024년 이후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메모리가 주력 제품군으로 부상했습니다. HBM은 2024년 전체 DRAM 시장 가치의 20% 이상을 차지했으며, 2025년에는 3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수익성 측면에서 기업에게 매력적이지만, 시장 전체의 안정성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HBM 생산의 가장 큰 문제는 웨이퍼 소비량입니다. 마이크론 CEO 산제이 메흐로트라는 "HBM3E는 동일한 기술 노드에서 DDR5 대비 약 3배의 웨이퍼 공급을 소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 생산을 우선시할 경제적 인센티브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2026년 출하 예정인 12층 HBM4 제품은 개당 500달러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2층 HBM3e(약 300달러)보다 60% 이상 높은 가격입니다.
이런 현상은 곧바로 완제품 제조사에 전이되어, 스마트폰·노트북 제조사들이 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2025년 DRAM 가격은 전년 대비 171% 급등했으며, 일부 시장에서 DDR4 칩 현물 가격은 약 50% 상승했고 계약 가격은 2025년 말까지 10~15%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부 경우 DDR4가 비교 가능한 DDR5보다 단위당 더 비싸지는 이례적인 역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2025년 4분기 서버 DRAM의 경우 계약 가격이 최대 50% 상승했으며,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조차 주문량의 70%만 충족받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2025년 4분기 DRAM과 NAND 플래시 가격을 최대 30% 인상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일부 공급업체는 중국에서 특정 제품에 대한 견적을 중단하고 불리한 계약에 묶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일 가격" 모델로 전환했습니다.
소비자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Corsair와 Adata 같은 브랜드의 인기 RAM 키트 소매 가격이 공급 부족으로 20~40% 증가했습니다. 삼성은 소비자용 DDR5에 대한 계약 가격 주문을 완전히 중단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라즈베리 파이는 2025년 10월 메모리 비용 상승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했으며, CEO 에벤 업튼은 "메모리 비용이 1년 전보다 약 120% 더 높다"고 밝혔습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한 원가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소비자 시장 전체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수급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 전략
칩 부족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 중입니다. 미국은 CHIPS법을 통해 현지 반도체 생산을 지원하며, 한국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4월 청주에 M15X 팹 건설을 시작했으며, 2025년 11월 완공, 2026년 3분기 대량 생산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일본과 유럽 역시 반도체 자급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정 혁신이 진행 중입니다. SK하이닉스는 독자적인 MR-MUF 패키징 기술을 활용해 칩 적층 압력을 6% 줄이고, 공정 시간을 단축해 생산성을 4배 증가시키며, 열 방출을 45% 개선했습니다. 개선된 MR-MUF는 16층 HBM4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회사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HBM 시장 점유율을 현재 약 10%에서 2025~2026년까지 20~25%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마이크론의 HBM TAM(총주소지정가능시장)은 2023년 약 40억 달러에서 2025년 25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5년 초 엔비디아와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블랙웰 칩을 포함한 차세대 RTX 50 GPU의 주요 공급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4년 1분기 영업이익이 933% 급등했으며, HBM3E 8H 메모리 제품을 같은 달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티 리서치는 글로벌 HBM 시장이 2027년까지 4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IDC는 AI 인기 덕분에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2025년 매출이 8,000억 달러에 달해 2024년 6,800억 달러 대비 17.6%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AI 수요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일반 메모리 시장의 안정적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필요합니다. 삼성전자는 2025년 4월 DDR4 생산을 중단하고 자동차/산업용으로만 공급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SK하이닉스는 DDR4 생산 능력을 20% 미만으로 줄이고 2026년 4월 완전히 생산을 중단할 계획입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산업 자동화, 의료 기술과 같은 장기 수명 주기 산업에서는 기존 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해 구형 DDR4 메모리를 소싱하는 것이 필수적이 되었습니다.
결국, HBM 중심의 산업 재편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기술 혁신과 균형 잡힌 생산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수급 불안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TrendForce는 DRAM 가격이 2025년 4분기에 분기 대비 13~18%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공급 제약은 2026년까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HBM 생산 집중은 AI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기존 반도체 생태계에 새로운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고부가 메모리 중심의 전략이 기업 수익성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소비자 시장의 칩 부족과 가격 급등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향후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과제는 AI와 범용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기술 혁신과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급 구조를 마련해야만, 산업 전체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메모리 부족 현상이 향후 3~4년간 지속될 수 있으며, AI 주도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과거 호황기보다 더 길고 강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