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8 싱가포르 3일, 비싼데 이유 있었다 교토에서 돌아온 직후 싱가포르行 비행기를 탔을 때,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교토는 낡고 조용한 것들이 값어치를 가지는 도시인데, 싱가포르는 반대로 새것과 효율이 전부인 곳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비싸기만 하고 감동은 없는 도시 아닐까'라는 편견을 솔직히 품고 있었죠. 3일이 지나고 짐을 싸면서, 저는 그 편견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도시 전체가 설계된 정원이었다마리나 베이 샌즈 주변을 처음 걸었을 때 든 생각은 "이건 공원인가, 도시인가"였습니다. 습도가 80%를 넘는 적도의 날씨 속에서도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풀이 자라고, 고층 빌딩 사이로 열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는 사진으로 수십 번 봤던 것인데도, 실제로 그 아래 서서 올려.. 2026. 4. 15. 오사카는 보는 여행이 아니라 먹는 여행이었다 오사카 하면 도톤보리, 오사카성,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하루 동선의 중심이 된 건 지도 위의 명소가 아니라 골목 어귀의 냄새였습니다. 걷다가 멈추고, 먹고 나서 또 걷고, 어느 순간 하루가 다 지나 있는 도시. 오사카는 그런 식으로 여행자를 데리고 다닙니다.줄을 서면서 깨달은 것, 하나타코하나타코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걸 처음 봤을 때, '관광지 특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줄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팔 유니폼 차림의 현지 직장인, 장바구니를 든 동네 아주머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저 같은 여행자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 구성이 왠지 신뢰감을 줬습니다.타코야키를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겉면의 굽기가 꽤 이상적이었습니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흐물.. 2026. 4. 14. 셔터 한번에 담긴 여행의 무게 2019년 11월, 영국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런던 외곽의 작은 필름 현상소 앞에서 저는 한 롤을 맡기며 망설였습니다. 한국보다 두 배는 비싼 현상·스캔 비용이 손에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망설임이야말로 필름 카메라가 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36컷의 무게디지털 카메라를 들면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빨라집니다. 연사 버튼을 누르고 나중에 그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는 생각이 촬영보다 삭제를 먼저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를 들면 그 흐름이 완전히 바뀝니다.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빛의 방향을 가늠하고, 이 장면이 한 컷을 쓸 가치가 있는지 잠깐 멈추게 됩니다.교토의 골목에서 저는 하루 종일 여섯 컷밖에 찍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이시베코지 돌담 사이.. 2026. 4. 13. 여행자의 마트 탐험기(코스트코, 여행경비) 7월 중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져서 숙소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결국 여행 첫날 장을 보러 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올 때면 반드시 코스트코 카드를 챙겨오는 편입니다. 물가가 워낙 높은 나라이기도 하고, 마트 안에서 느끼는 현지 생활의 질감이 어떤 관광지보다도 솔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코스트코 카드 하나가 여행 경비를 바꾼다미국 물가는 체감상 한국보다 외식비가 두 배 가까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해결하면, 한국에서 먹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의 여행을 거치며 확인했습니다. 특히 일행이 많을수록 이 차이는 더 극명해집니다. 네 명이 함께 간 여행에서 이틀치 아침과 .. 2026. 4. 12. 모나코, 2유로로 입장한 부자들의 무대 람보르기니 옆에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정확히는, 카지노 드 몬테카를로 앞 계단 아래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며 멈춰 섰습니다. 흰 건물 위로 코트다쥐르의 햇살이 쏟아지고,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느릿느릿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운동화에 배낭 차림이었고, 카지노 안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야 알았습니다.니스에서 버스를 타고, 2유로에 입국모나코 가는 방법을 찾으면 대부분 기차나 렌터카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니스 버스터미널에서 100번 버스를 탔습니다. 편도 2유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나라에 입장하는 데 든 비용이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보다 싼 셈이었습니다.창밖으로 지중해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풍경이 확 바뀌었습니다. 야자수 사이로 요트들이 줄 서 있.. 2026. 4. 10. 우붓의 오후, 논밭 앞에서 멈춘 시간 하와이의 오후는 늘 바람이 많았습니다. 태교 여행으로 아내와 함께 다녀온 그 섬에서의 시간은 행복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쉬고 있다'는 느낌보다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관광지 특유의 분주함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달까요. 그런데 우붓은 달랐습니다. 발리 한가운데, 논밭이 펼쳐진 이 작은 마을의 오후는 공기 자체가 다른 밀도로 느껴졌습니다.13년간 조직 관리와 숫자를 붙들고 살아온 제게 '진짜 쉰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우붓은 꽤 직접적인 방식으로 알려주었습니다.시내 소음에서 벗어나, 논두렁 산책로로우붓 시내는 생각보다 시끌벅적합니다. 스쿠터 소리,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오토바이, 어디서나 들려오는 가믈란 음악. 처음엔 그 활기가 좋았는데, 하루가 지나자 슬슬 조용한 곳이 그리워지.. 2026. 4. 9. 이전 1 2 3 4 ··· 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