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5 여행자의 마트 탐험기(코스트코, 여행경비) 7월 중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져서 숙소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결국 여행 첫날 장을 보러 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올 때면 반드시 코스트코 카드를 챙겨오는 편입니다. 물가가 워낙 높은 나라이기도 하고, 마트 안에서 느끼는 현지 생활의 질감이 어떤 관광지보다도 솔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코스트코 카드 하나가 여행 경비를 바꾼다미국 물가는 체감상 한국보다 외식비가 두 배 가까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해결하면, 한국에서 먹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의 여행을 거치며 확인했습니다. 특히 일행이 많을수록 이 차이는 더 극명해집니다. 네 명이 함께 간 여행에서 이틀치 아침과 .. 2026. 4. 12. 모나코, 2유로로 입장한 부자들의 무대 람보르기니 옆에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정확히는, 카지노 드 몬테카를로 앞 계단 아래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며 멈춰 섰습니다. 흰 건물 위로 코트다쥐르의 햇살이 쏟아지고,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느릿느릿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운동화에 배낭 차림이었고, 카지노 안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야 알았습니다.니스에서 버스를 타고, 2유로에 입국모나코 가는 방법을 찾으면 대부분 기차나 렌터카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니스 버스터미널에서 100번 버스를 탔습니다. 편도 2유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나라에 입장하는 데 든 비용이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보다 싼 셈이었습니다.창밖으로 지중해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풍경이 확 바뀌었습니다. 야자수 사이로 요트들이 줄 서 있.. 2026. 4. 10. 우붓의 오후, 논밭 앞에서 멈춘 시간 하와이의 오후는 늘 바람이 많았습니다. 태교 여행으로 아내와 함께 다녀온 그 섬에서의 시간은 행복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쉬고 있다'는 느낌보다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관광지 특유의 분주함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달까요. 그런데 우붓은 달랐습니다. 발리 한가운데, 논밭이 펼쳐진 이 작은 마을의 오후는 공기 자체가 다른 밀도로 느껴졌습니다.13년간 조직 관리와 숫자를 붙들고 살아온 제게 '진짜 쉰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우붓은 꽤 직접적인 방식으로 알려주었습니다.시내 소음에서 벗어나, 논두렁 산책로로우붓 시내는 생각보다 시끌벅적합니다. 스쿠터 소리,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오토바이, 어디서나 들려오는 가믈란 음악. 처음엔 그 활기가 좋았는데, 하루가 지나자 슬슬 조용한 곳이 그리워지.. 2026. 4. 9. 하와이에서 진짜 밥값을 찾아 헤맨 이야기 프랑스 코트다쥐르를 여행할 때도, 밴쿠버를 걸을 때도 물가 때문에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와이는 그 수준이 달랐습니다. 관광지 식당에서 스테이크 하나 시켰다가 계산서를 보고 잠시 멈췄던 그 순간, 솔직히 한국에서 갔던 동네 스테이크 집이 떠올랐습니다. 맛도 그쪽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 식당 퀄리티가 워낙 올라와 있어서, 어지간한 해외 식당은 가성비 싸움에서 이미 지고 들어가는 느낌입니다.그래서 저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도 앱보다 두 발이 먼저였습니다.유명한 곳 말고, 지나치다가 멈춘 곳여행을 오래 다니다 보면 생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줄 서있는 곳은 일단 패스하고,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별 고민 없이 들어가는 곳을 눈여겨보는 것입니다. 하와이에서.. 2026. 4. 8. 마레 지구, 팔라펠 냄새와 갤러리 사이에서 잃어버린 오후 올림픽이 한창이던 여름 파리, 정확히는 8월 초 어느 화요일 오후 두 시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생폴역에서 내려 마레 지구를 느긋하게 걷는 것이었는데, 올림픽 기간 교통 통제로 버스 노선이 반쯤 바뀌어 있었습니다. 결국 센 강 다리 두 개를 건너 걸어서 들어갔는데, 그 덕분에 저는 파리를 처음 왔을 때도, 두 번째 왔을 때도 보지 못했던 골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불편함이 여행의 루트를 바꿔놓은 셈이었습니다.파리는 세 번째 방문부터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냄새 때문에 당황했고, 두 번째는 유로 기간이라 온 도시가 축구공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 사람들이 파리를 찾는 이유가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마레 지구는 그 깨달음이 가장 또렷하게 새겨진 동네였.. 2026. 4. 7. 카오산 로드, 성지라는 말이 무색했던 새벽 새벽 두 시, 수완나품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오전 여섯 시였습니다. 방콕 시내에서 공항까지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어딘가에서 서너 시간을 버텨야 했고, 마침 카오산 로드가 근처였습니다. "배낭여행자의 성지"라는 말은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짐을 끌고 카오산 로드에 발을 들인 건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기대는 조금씩, 그러나 꽤 확실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전설처럼 들어온 거리, 카오산 로드카오산 로드는 방콕 구시가지 프라나콘 지구에 위치한 400미터 남짓한 거리입니다. 1980년대부터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환전소가 모이면서 세계 각지의 배낭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고, 언제부턴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2026. 4. 6. 이전 1 2 3 4 ··· 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