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기술 전쟁의 여파가 첨단 공정을 넘어 범용 반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수출 규제로 직격탄을 맞은 비쉐이(Vishay)와 메렉시스(Melexis)의 사례를 통해 2026년 현재 변화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와 전력 반도체 시장의 실질적인 투자 가치를 13년 차 전문가의 시선으로 정밀 진단합니다.
반도체 업계에 오랜기간 있으면서 느낀 것은 시장의 흐름은 기술이 결정하지만 기업의 생존은 정치가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7nm, 5nm 같은 초미세 첨단 공정의 기술 격차에만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제는 '구형'이라 치부되던 레거시(Legacy) 공정, 즉 전력 반도체와 센서를 생산하는 범용 공정이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부로 끌려 들어왔습니다. 오늘 분석할 비쉐이(Vishay Intertechnology)와 메렉시스(Melexis)의 사례는 단순히 한 기업의 실적 악화 문제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계가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비쉐이의 뉴포트 웨이퍼 팹(Newport Wafer Fab)으로 향하는 반도체 장비 수출 라이선스를 보류했다는 소식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엔지니어들과 구매 담당자들은 "이제는 장비 하나 들여오는 것도 외교적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쉽니다. 비쉐이는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우량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해당 팹이 중국 자본인 넥스페리아(Nexperia) 소유였다는 '지정학적 낙인' 때문에 성장의 발목이 잡힌 형국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미지를 통해 제시된 구체적인 재무 데이터와 공급망 분석을 바탕으로, 미-중 전쟁의 숨은 희생양이 된 범용 반도체 기업들의 현주소와 향후 투자 전략을 심도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뉴포트 팹 인수와 네덜란드 수출 규제의 치명적 결합
비쉐이(Vishay)가 영국 최대의 반도체 공장인 뉴포트 웨이퍼 팹을 인수한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전력 반도체(Power Semi) 수요가 폭증하는 전기차 및 재생 에너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네덜란드 정부의 수출 통제라는 변수가 등장합니다. 이미지를 보시면 비쉐이의 수익성이 2023년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시장 수요의 감소 때문만이 아닙니다. 핵심 장비인 노광기(Lithography) 공급이 지정학적 이유로 차단되면서 공장 가동 효율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넥스페리아가 소유했던 이 공장은 중국 윙텍(Wingtech)의 자본이 섞여 있다는 이유로 서방 국가들의 집중 견제를 받았습니다. 비쉐이가 이를 인수하며 '세탁'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정부는 해당 팹으로 향하는 장비가 결국 중국의 기술 영향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실무에서 경험한 바로는, 이러한 수출 라이선스 불허 결정은 단순히 장비 한 대가 못 들어오는 문제가 아닙니다. 전체 공정 라인의 밸런스가 무너지며 수율(Yield) 관리에 치명적인 공백을 만듭니다. 비쉐이가 계획했던 실리콘 카바이드(SiC) 및 질화갈륨(GaN) 등 차세대 전력 반도체 로드맵이 최소 1~2년 이상 뒤처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규제가 비단 비쉐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벨기에의 차량용 센서 강자 메렉시스(Melexis) 역시 네덜란드산 장비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생산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첨단 공정이 '창'이라면, 레거시 공정은 '방패'입니다. 방패가 뚫리면 전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자주 강조하는 이 말처럼, 범용 반도체의 공급 차질은 결국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미지 속의 공급망 분석 차트는 비쉐이와 메렉시스가 자동차 산업 매출 비중이 각각 45%와 90%에 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들이 겪는 규제의 고통이 고스란히 테슬라, 현대차,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로 전이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재무 데이터로 본 비쉐이의 위기와 넥스페리아의 그림자
비쉐이의 재무 지표를 분석해 보면 상황의 엄중함이 더 명확해집니다.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이 과거 대비 현저히 낮아진 상태이며, 특히 차량용 반도체 섹터에서의 영업 이익률 둔화가 두드러집니다.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재편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가장 저렴한 곳에서 장비를 들여와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에서 장비를 조달해야 하기에 구매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비쉐이는 현재 뉴포트 팹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반면, 이 갈등의 원인 제공자인 넥스페리아(Nexperia)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자체적인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넥스페리아가 유럽 시장에서 여전히 40%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방 국가들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저가형 범용 반도체 없이는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업계 리포트를 작성하며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쉐이가 넥스페리아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생산 단가를 현재보다 최소 20% 이상 낮춰야 하지만, 장비 규제라는 족쇄가 채워진 상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한, 마진 비교시 비쉐이가 경쟁사 대비 높은 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역으로 '지정학적 디스카운트'로 작용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투자자들은 비쉐이의 견고한 포트폴리오에 주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노후화된 장비 교체 주기와 네덜란드의 수출 승인 여부에 따라 분기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불안정한 구조입니다. 13년 전 제가 처음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런 시나리오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네덜란드 외무부의 결정 한 통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과 글로벌 공급망의 뉴노멀
비쉐이와 메렉시스가 겪는 고난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악재가 아닌, 반도체 공급망의 '뉴노멀(New Normal)'을 상징합니다. 이제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고 '안보'와 '회복 탄력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과 반도체 공급 지수가 반비례하는 구간이 나타나는데, 이는 범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전체 산업의 Bottleneck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비쉐이가 생산하는 작은 저항기(Resistor) 하나, 다이오드 하나가 없어서 수천만 원짜리 전기차가 출고되지 못하는 현상이 2026년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동남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옮기려는 기업들을 많이 접합니다. 하지만 비쉐이처럼 영국에 거점을 둔 기업들은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막대한 설비 투자비(CAPEX)가 이미 투입되었고, 숙련된 노동력을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급망의 탈중국화는 구호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생한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냉혹합니다. 비쉐이가 네덜란드 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는 동안, 그 공백을 노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규제를 피해 우회 수출을 노리는 제3국 기업들이나 기술 내재화에 성공한 중국 기업들입니다.
결국 범용 반도체의 무기화는 서방 국가들에게도 양날의 검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휘두른 규제의 칼날이 비쉐이 같은 미국 기업과 메렉시스 같은 유럽 기업의 목을 겨누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미지에서 제시된 데이터처럼, 비쉐이의 재고 자산은 늘어나고 현금 흐름은 둔화되는 추세입니다. 이는 장비 부족으로 완제품 생산이 지연되면서 중간재 상태로 묶여 있는 자산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2026년 하반기까지도 비쉐이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투자 관점에서 본 시사점: 기회인가 함정인가?
2026년 1월 현재, 비쉐이(Vishay)에 대한 투자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현재의 낮은 밸류에이션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관점에서는 네덜란드 정부의 수출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비쉐이의 뉴포트 팹은 '수익 창출원'이 아닌 '현금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중재로 비쉐이가 특별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억눌렸던 생산 능력이 폭발하며 주가는 강력한 리바운드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스크를 선호하지 않는 투자자라면, 규제의 영향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가진 장비 업체나, 아예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된 지역에 신규 팹을 건설 중인 기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비쉐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기업이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정부가 길을 막으면 답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쉐이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생산 기지를 재배치하는 속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동남아시아나 인도로의 생산 이전을 가속화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매수 신호가 될 것입니다.
마치며: 변화하는 판도를 읽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
반도체 산업은 이제 기술의 영역을 넘어 고도의 심리전과 외교전이 펼쳐지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비쉐이와 메렉시스가 겪고 있는 진통은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마찰음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단순히 '반도체 업황이 좋다'는 뉴스에 현혹되지 마시고, 해당 기업이 어느 나라의 장비를 쓰는지, 주요 생산 기지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반드시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13년 차 전문가로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조언은 "공급망의 지도(Map)를 그릴 줄 모르면 반도체 투자는 도박과 같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변화하는 시장의 이면을 날카롭게 분석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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