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년 동안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AI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공격적으로 설비투자(CAPEX)를 늘려 왔습니다. 수백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 센터, 초고가 GPU, 전력 인프라까지 감안하면 AI 인프라 투자는 이미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IBM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는 이런 AI 지출이 현재의 인프라 비용 구조에서는 경제적으로 맞지 않다는 회의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꽤 냉정한 숫자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투자자와 기업 모두가 곱씹어 볼 만한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는 IBM CEO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AI 지출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 어떤 전제들이 바뀌어야 이 구조가 성립하는지, 그리고 투자자가 어떤 관점으로 이 흐름을 봐야 할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100기가와트 AI 데이터 센터, 8조 달러의 ‘극단적인 수학’
먼저 IBM CEO가 언급한 ‘냅킨 매스(napkin math, 식당 냅킨에 적는 수준의 대략적인 계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AI 데이터 센터 용량 100기가와트(GW)를 기준으로 대략적인 자본 지출 규모를 추산했습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1GW 규모 데이터 센터를 짓고 장비를 채우는 데 약 800억 달러의 CAPEX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100GW로 단순히 곱하면 총 8조 달러 정도의 자본이 들어가는 구조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 정도 돈을 쓰면, 그 돈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벌 수 있느냐”입니다. 만약 자본비용(이자 + 자기자본 기대수익)을 연간 10%라고 가정하면, 8조 달러에 대한 연간 자본비용만 8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즉, 단지 돈을 빌려 쓰고, 투자자의 기대수익을 채워주기 위해서만 최소 연 8천억 달러의 이익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인건비·전기요금·유지보수 등 운영비는 아직 포함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현재의 AI 인프라 단가와 투자 속도로 계속 달리려면, 전 세계 AI 서비스가 창출해야 하는 이익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클라우드 기업, 빅테크, 스타트업들이 모두 합쳐 만들어낼 미래의 AI 매출과 이익이 이 수준에 닿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는 “지금 구조에선 수학이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입니다.
게다가 영란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과 규제 기관도 최근 AI 붐에 힘입어 주식·부채 시장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부풀어졌을 수 있다며 경고음을 내고 있습니다. 즉, AI 인프라 투자가 부채와 주가 상승에 기대어 과열된 상태일 수 있고, 이 구조가 한 번 흔들리면 AI 지출도 급격히 조정될 수 있다는 시그널입니다. AI 지출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감가상각의 함정: AI 칩 수명과 회계의 간극
IBM CEO가 특히 강조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AI 하드웨어의 감가상각 문제입니다. 그는 데이터 센터에 투입되는 GPU·AI 가속기 등의 경제적 수명이 5년이 아니라, 훨씬 더 짧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 발언에서도 “5년 안에 전부 사용해야 한다. 그 시점이 되면 버리고 다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언급했죠. AI 칩의 성능 향상 속도가 너무 빨라서, 2~3년만 지나도 이전 세대 칩은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회계상의 감가상각 기간과 실제 경제적 수명이 서로 어긋날 때 생깁니다. 일부 기업들은 AI 칩을 5~6년에 걸쳐 감가상각하고 있는 반면, 실제 경제적 수명은 2~3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경우 재무제표 상에서는 이익이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자금 회수 속도가 하드웨어 교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EPS, 영업이익률만 보고 판단했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리플레이스 CAPEX(교체 투자)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가치투자자 마이클 버리도 비슷한 경고를 던졌습니다. 그는 일부 기업들이 AI 칩의 감가상각을 너무 길게 잡고 있다며, 실제 수익성보다 과장된 이익이 보고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회계·감가상각의 간극이 결국 AI 인프라 버블의 취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대표적인 GPU 기업에 공매도를 건 이유 중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 감가상각 문제는 두 가지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 현재 AI 인프라 투자를 하는 기업이, 하드웨어 수명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의 캐시플로우를 실제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
- 2) 감가상각 기간이 현실과 다르게 설정되어 이익이 과대 계산되어 있지는 않은가?
만약 두 질문에 모두 “예스”를 confidently 말하기 어렵다면, AI 지출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IBM CEO의 회의론은 단지 비관적 전망이 아니라, 재무 구조와 회계의 기초를 짚는 건강한 의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AGI 낙관론 vs AI 회의론, 어디에 서야 할까
AI 지출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AGI(인공 일반 지능)입니다. 지금처럼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하는 서사는 대체로 “언젠가 AGI 수준의 AI가 등장하면, 지금의 투자금 이상을 벌어 줄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도 AGI를 둘러싼 시각은 크게 갈립니다. IBM CEO는 현재 기술로 AGI에 도달할 가능성을 0~1% 수준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OpenAI는 약 1.4조 달러 규모의 데이터 센터 인프라 투자 약속을 언급하며, AGI에 대한 강한 확신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메타·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역시 연간 수백억 달러의 CAPEX를 AI에 쏟아붓고 있고, “AI 퍼스트 기업”을 지향하며 공격적으로 인프라를 확장 중입니다.
한편, IBM CEO의 회의론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Salesforce CEO 마크 베니오프는 스스로를 “AGI 회의론자”라고 부르며, 과열된 AGI 담론을 “최면술에 가까운 분위기”라고 비유했습니다. 구글 브레인 창립자 앤드루 응 역시 AGI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됐다고 평가하며,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AGI 신화가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가치라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OpenAI 공동 창업자였던 일리야 수츠케버도 최근 인터뷰에서 “단지 컴퓨팅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변혁적인 AI를 만들 수 없다”며, 업계가 다시 ‘연구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IBM CEO도 AGI에는 회의적이지만 현재의 AI 도구들이 엔터프라이즈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점에는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기업용 AI가 수조 달러 규모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AGI라는 최종 신화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현재 기술이 확실히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더 집중하자는 관점에 가깝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지점에서 균형 잡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AGI가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현재 수준의 AI만으로도 인프라 투자를 상쇄할 만큼의 생산성·매출을 낼 수 있는가?
- 현재의 AI 지출 속도와 규모가 AGI 전제를 크게 깎아도 여전히 합리적인 수준인지, 또는 AGI를 가정해야만 맞아 떨어지는 ‘하이 리스크 베팅’인지?
IBM CEO의 회의론은 “AI 자체에 반대한다”가 아니라, “AGI 신화가 만들어낸 과도한 지출 구조를 경계한다”에 가깝습니다. 결국 투자자는 AGI 낙관론과 AI 회의론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서 있을지를 스스로 정해야 하며, 그 입장에 따라 AI 인프라 관련 종목과 시장을 보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4. AI 지출은 정말 지속 가능한가? 투자자가 체크해야 할 포인트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AI 지출은 정말 지속 가능한 구조일까요? IBM CEO의 회의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AI 버블이니 전부 피해야 한다”고 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몇 가지 핵심 포인트를 체계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첫째, 단위당 경제성(Unit Economics)입니다. AI 관련 기업에 투자할 때는 “얼마를 투자해서, 어떤 서비스나 제품으로, 어느 정도의 마진을 남기는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 GPU·데이터 센터에 투입된 자본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 클라우드·AI 서비스 가격 인상 여지가 있는지, 아니면 경쟁 심화로 가격 인하 압력이 더 큰지
- 고객당 매출(ARPU)과 이탈률(Churn)을 통해 AI 서비스의 ‘필수성’이 입증되고 있는지
이런 지표를 통해 AI 지출이 단순한 “미래에 대한 베팅”인지, 아니면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 위의 확장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CAPEX와 감가상각의 질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 하드웨어의 경제적 수명이 짧다면, 감가상각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은 기업은 언젠가 큰 폭의 이익 조정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자는 다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 AI 관련 설비·장비의 회계상 내용연수와 실제 기술 교체 주기가 얼마나 다른지
- 자유현금흐름(Free Cash Flow)이 CAPEX를 충분히 커버하고 있는지
- 추가적인 차입·증자를 통해 AI 인프라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셋째, 포트폴리오 차원의 리스크 관리입니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과열되었다고 판단되면, 투자자는
- 순수 인프라 플레이(데이터 센터·GPU) 비중을 조절하고,
- AI를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수혜 기업(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자동화 솔루션, 산업용 AI 등)에 분산 투자하거나,
- AI 사이클의 조정 국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캐시플로우를 가진 기업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습니다. 즉, “AI 서사를 파는 기업”보다 “AI를 잘 써서 돈을 버는 기업”에 더 높은 비중을 둘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넷째, 매크로와 규제 리스크입니다. AI 인프라 투자의 상당 부분은 부채와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금리가 다시 오르거나, 규제 당국이 AI 관련 금융·데이터 센터 투자에 브레이크를 걸면, 지금 같은 CAPEX 속도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때 대규모 차입에 의존한 플레이어일수록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AI 지출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답은, “AI가 미래다”라는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각 기업의 숫자와 전략을 얼마나 냉정하게 들여다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5. 결론: AI를 믿으면서도 ‘수학’을 의심해야 할 때
AI는 분명 이미 우리의 일상과 비즈니스에 깊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IBM CEO 역시 현재의 AI 도구들이 엔터프라이즈에서 수조 달러급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한 번 강조한 지점은, “지금의 인프라 비용 구조와 투자 속도로는 수학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는 양극단이 아닙니다. “AI는 버블이니 전부 거부하자”도, “AGI가 다 해결해 줄 테니 무한정 투자하자”도 아닌,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하되, 숫자와 리스크를 집요하게 점검하는 태도입니다.
정리하자면, AI 지출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 판단하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현재 AI 인프라 투자가, 하드웨어 교체 주기 안에 충분히 회수 가능한 구조인가?
- 회계상의 이익과 실제 경제적 수명·현금흐름 사이에 괴리가 크지 않은가?
- AGI라는 불확실한 미래에만 기대지 않고,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가치 위에서 투자와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AI 시대에는 기술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그 기술 뒤에 숨은 수학과 재무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IBM의 회의론은 AI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AI를 믿더라도, 숫자는 끝까지 확인하라”는 냉정한 조언에 가깝습니다. 이 관점을 기억한다면, AI 버블과 AI 혁신 사이에서 보다 균형 잡힌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