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베이 근교 여행을 준비하면서 단체 투어를 선택하는 게 망설여졌습니다. 평소 혼자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이게 맞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우펀의 빨간 등불 아래 서는 순간, 그 모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타이베이는 도시 자체가 아담해서 이틀만 돌아봐도 지도 바깥이 궁금해지는데, 근교 여행지들은 각각 항만도시, 자연 바다, 산자락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나뉘어 있어 선택지가 꽤 다양합니다. 가시기 전에 반드시 읽어보고 가세요.
지우펀, 등불 아래의 골목
지우펀은 동중국해를 바라보는 산기슭 마을입니다. 버스가 산을 굽이굽이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점점 멀어지더니, 해가 기울 무렵 도착했습니다. 저는 낮의 지우펀을 모르는 채로 처음 마주한 게 저녁 골목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잘된 일이었습니다.
빨간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딱 맞춰 들어간 거죠. 아메이차루라는 찻집 앞 계단 풍경은 사진으로 수백 번 봤던 그것이었지만, 직접 그 계단 위에 서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등불이 켜진 골목, 계단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항구와 바다, 그리고 등 뒤에서 올라오는 간식 냄새가 동시에 감각을 채웠습니다.
지우펀 라오제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형성된 전통 상가 거리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오래된 먹거리 골목이죠. 여기서는 딱히 계획 없이 눈에 보이는 걸 집어 들어도 분위기가 반은 해줍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사람들을 피해 각도를 잡아야 했는데, 그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느낌입니다.
일부 여행자들은 지우펀이 센과 치히로의 모티브라고 알고 가는데, 실제로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지우펀의 아름다움을 바래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등불 아래 골목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였으니까요.
예스진지 투어, 효율과 타이밍
예스진지(野柳十分九份)는 예류(野柳), 스펀(十分), 진과스(金瓜石), 지우펀(九份)을 묶어 부르는 투어 코스명입니다. 네 곳의 첫 글자를 조합한 이름이죠. 이 코스가 인기 있는 이유는 타이베이 근교의 핵심 여행지를 하루에 효율적으로 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체 투어를 선택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실제로 이용해보니 생각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각 스팟에서 머무는 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지우펀처럼 저녁 타이밍이 중요한 곳은 투어의 일정 구조가 오히려 감각적 경험을 설계해주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혼자 대중교통으로 움직였다면 이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을 겁니다.
예스진지 투어의 주요 거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류지질공원: 해수 침식과 풍화로 만들어진 독특한 바위 지형. 여왕바위(女王頭)가 랜드마크입니다.
- 스펀: 천등(天燈) 날리기로 유명한 산골 마을. 기차가 상점 사이를 지나가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 진과스: 황금광산 유적지. 일제 시대 가옥과 황금폭포가 있습니다.
- 지우펀: 빨간 등불 골목과 오션뷰 숙소로 유명한 산기슭 마을입니다.
한국 여행 플랫폼에서는 대개 예스진지를 8~10시간 코스로 판매하는데, 클룩이나 마이리얼트립 같은 곳에서 예약하면 한국어 가이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출처: Klook). 가격은 인당 5만~7만 원 수준입니다.
다만 단체 투어의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우펀에서 더 있고 싶을 때 버스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제일 아쉬웠습니다. 등불이 완전히 짙어지는 늦은 밤, 사람이 좀 빠진 골목을 천천히 걷고 싶었는데 그건 못 했거든요. 그래서 지우펀은 두 번 가야 하는 곳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 vs 투어, 어떤 선택이 맞을까
대중교통으로 근교를 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하고, 둘째, 부지런해야 합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965번 버스가 바로 연결되고, 지룽에서는 788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루이팡(瑞芳) 역에서는 핑시선(平溪線) 기차를 타고 스펀이나 허우통(猴硐) 같은 산골 마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핑시선은 약 한 시간에 한 편 정도로 운행되는 지선 철도로, 산간 지역을 연결하는 로컬 노선입니다.
제 경험상 대중교통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움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무 데나 갈 수 있고, 택시 투어에 비해 엄청 저렴합니다. 두 명이 택시 투어를 하면 인당 8만 원 이상인데, 대중교통은 2만 원 안쪽에서 교통비가 끝나거든요.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이동 시간도 깁니다. 예스진지를 다 돌아보려면 타이베이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해야 하고, 걷기도 많이 걸어야 합니다. 스펀 마을에서 폭포 가는 것, 예류 지질공원 버스정류장에서 공원까지 걸어가는 것, 조금 거리가 있는데 투어나 택시는 주차장에 내려주니까 그런 수고를 아낄 수 있죠.
택시 투어는 3~4명 이상일 때 가성비가 나옵니다. 루이팡 역 앞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고, 루트를 어느 정도 변경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류 대신 허핑공원(和平島公園)을 가거나, 진과스 마을은 생략하고 황금폭포만 보는 식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처음 타이베이 근교를 가는 거라면 투어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우펀처럼 타이밍이 중요한 곳은 투어의 일정 설계가 오히려 경험의 질을 높여주거든요.
진과스는 지우펀에서 가깝지만 결이 좀 다릅니다. 황금광산이 있던 마을이라는 역사성 덕분에 일제 시대 가옥과 신사 흔적이 남아 있고, 황금폭포는 이름이 좀 거창하지만 실제로 보면 납득이 갑니다. 물이 노란 게 아니라 땅이 노란 거거든요. 황철광 성분이 지하수에 섞여 흘러내리면서 바위를 그렇게 물들인 겁니다. 네이밍이 영리하다 싶으면서도, 실제로 꽤 인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타이베이 근교는 항만도시, 자연 바다, 산자락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나뉘어 각각의 매력이 뚜렷합니다. 단수이(淡水)는 석양 명소로, 양명산(陽明山)은 활화산 트레킹으로, 베이터우(北投)는 온천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처음 타이베이에 온다면 저는 지우펀을 가장 먼저 추천합니다. 빨간 등불 아래 골목을 걸으며 느낀 그 압도적인 분위기는, 단체 투어의 시간 제약도 잊게 만들었으니까요. 지우펀은 두 번 가야 한다는 말, 이제 이해가 됩니다. 처음은 예스진지로 감을 잡고, 두 번째는 직접 버스 타고 올라와 숙박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 참고: https://youtu.be/5mA9RNmbrhs?si=ZM7pOjj9KfSVb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