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에서 한 시간이면 에도시대로 갈 수 있다"는 말, 믿으시나요?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카와고에(川越)에 도착한 순간,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검은 벽의 쿠라즈쿠리(蔵造り)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메인 거리를 걷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착각이 들었죠. 도쿄 여행 중 하루쯤은 번잡함을 벗어나고 싶은 분들께 카와고에는 완벽한 선택지입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없었고, 도쿄에 사는 일본인 친구도 30년간 도쿄에 살면서 한번도 안가봤다고 하는 곳이니 한번쯤 가볼만한 곳 아닌가 싶습니다.
카와고에,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이면 닿는 에도 시대
카와고에는 '코에도(小江戸)', 즉 '작은 에도'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여기서 에도(江戸)란 도쿄의 옛 이름으로,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일본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던 시대를 의미합니다. 카와고에는 그 시대의 건축양식과 거리 풍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이런 별칭을 얻게 되었죠.
세이부 신주쿠역에서 혼카와고에역까지 약 50분, 요금은 편도 500엔(약 5,000원) 정도입니다. 이케부쿠로에서 출발해도 소요 시간과 요금은 비슷합니다. JR 카와고에역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메인 거리까지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출처: 카와고에시 관광협회). 저는 세이부선을 이용했는데, 혼카와고에역에서 내려 사람들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치방가 상점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시기는 추석 즈음이었는데, 가을 초입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일본의 햇살은 여전히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그 더위 덕분에 카와고에 명물인 고구마 아이스크림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죠. 입안에 넣는 순간 퍼지는 고구마 특유의 진한 풍미와 시원함은 어떤 고급 디저트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카와고에는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입니다.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주요 명소들이 도보권 내에 모여 있어, 구글 지도만 있으면 길 찾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토키노카네(時の鐘) → 카시야 요코초(菓子屋横丁) → 히카와 신사(氷川神社) → 혼마루 고텐(本丸御殿) 순서로 동선을 짜면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 음식 천국, 고구마부터 장어까지
카와고에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길거리 음식입니다. 일본의 다른 관광지보다 훨씬 다양하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죠. 저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거리를 걷다가 끌리는 음식을 하나씩 맛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소개할 음식은 야키오니기리(焼きおにぎり)입니다. 나카이치 본점에서만 판매하는 이 메뉴는 숯불에 직접 구워내는 주먹밥으로, 카와고에에서 가장 유명한 길거리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겉은 바삭하게 눌러붙은 누룽지 같은 식감에, 안은 밥알 하나하나에 간장 베이스의 단맛이 느껴집니다. 위에 뿌려진 가쓰오부시(かつお節)가 열기에 살짝 흔들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여기서 가쓰오부시란 가다랑어를 얇게 깎아 만든 일본 전통 조미료로, 감칠맛을 내는 핵심 재료입니다. 평일에도 30분 정도 줄을 서야 하지만, 그만큼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메뉴입니다.
카와고에는 고구마로 유명한 지역이라 고구마 관련 간식이 특히 많습니다. 이모코이(芋恋)는 고구마 앙금과 모찌를 합친 전통 과자로, 카쇼야마(菓匠右門)라는 현지 유명 점포에서 구매했습니다. 겉은 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고, 안에는 고구마 앙금이 꽉 차 있어 한 입 베어 물면 고구마 특유의 달콤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고구마 본연의 맛이 강한 편이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죠.
하치(HACHI)의 고구마 브륄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통 고구마를 그대로 구운 뒤 위에 설탕을 뿌려 겉면을 캐러멜라이징한 스타일입니다. 여기서 캐러멜라이징이란 설탕을 고온에서 녹여 카라멜 특유의 갈색과 고소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조리 기법을 말합니다. 겉은 바삭하게 깨지고, 안쪽은 촉촉하고 달달한 고구마라서 피곤할 때 당이 확 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가게 안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죠. 길거리 음식 위주로 돌아다니다 보면 잠깐 쉬어갈 장소가 애매한데, 그럴 때 커피와 함께 고구마 브륄레를 먹으며 동선을 정리하기 딱 좋았습니다.
간장 아이스크림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전혀 감이 안 왔는데, 한입 먹어보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간장의 짭짤함이 튀지 않고 우유 아이스크림의 진한 맛을 살짝 끌어올려주는 느낌이라 단짠 밸런스가 굉장히 잘 잡혀 있었죠. 달기만 한 디저트가 부담스러운 분들이라면 오히려 더 잘 맞을 수 있는 메뉴입니다.
주요 길거리 음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야키오니기리(나카이치 본점): 숯불 구운 주먹밥, 30분 대기 각오
- 이모코이(카쇼야마): 고구마 앙금 모찌, 부드럽고 달콤함
- 고구마 브륄레(HACHI): 캐러멜라이징된 통 고구마, 매장 내 착석 가능
- 간장 아이스크림: 단짠 밸런스 최고, 호불호 없는 맛
- 야키모치 센베이: 간장 구운 찹쌀떡, 쫀득한 식감
- 타코센베이(카논): 타코야키와 센베이의 결합, 바삭하고 무난함
- 운기덴베이: 장어 꼬치, 비교적 저렴하게 장어 맛 체험 가능
토키노카네와 히카와 신사, 카와고에의 양대 랜드마크
카와고에를 상징하는 장소를 하나 뽑으라면 단연 토키노카네(時の鐘)입니다. 이치방가 상점가 한가운데 위치한 이 종루는 카와고에라는 도시 자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죠. 에도 시대부터 시간을 알리는 종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하루 네 번(오전 6시, 정오, 오후 3시, 오후 6시) 실제로 종이 울린다고 합니다(출처: 카와고에시청).
제가 방문했을 때도 주변은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변 건물 전부가 에도풍 창고 건축양식인 쿠라즈쿠리라서, 사진을 대충 찍어도 분위기가 잘 나왔죠. 쿠라즈쿠리란 흙벽과 검은 기와로 외벽을 마감한 일본 전통 창고 양식을 말합니다. 화재에 강하고 습도 조절이 잘 되어 상인들이 귀중품이나 상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죠.
메인 거리에서 도보로 5~10분 정도 걸으면 히카와 신사(氷川神社)에 도착합니다. 일본에는 수많은 신사가 있지만, 신사마다 모시는 신이 다릅니다. 히카와 신사는 연애와 인연의 신으로 유명해서 연인이나 부부가 많이 찾는 장소죠. 실제로 제가 방문했을 때도 젊은 커플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히카와 신사에서 가장 유명한 체험은 잉어 오미쿠지(鯛みくじ)입니다. 낚싯대처럼 생긴 막대를 이용해 잉어 모양의 오미쿠지(운세 제비)를 낚아 올리는 방식인데, 단순히 뽑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하나 뽑아봤는데, 운세를 보면서 가볍게 즐기기에 딱 좋았죠. 이 잉어 오미쿠지는 가져갈 수도 있어서 기념품처럼 소장하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혼마루 고텐(本丸御殿)도 들러볼 만합니다. 메인 거리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필수 코스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혼마루 고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이 아니라 번(藩)의 업무를 보던 관청에 가까운 건물입니다. 여기서 번이란 에도 시대에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가 다스리던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내부를 보면 누가 어디서 집무를 받았는지, 어떤 공간에서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했는지 에도 시대 행정 공간의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입장료가 무료라서 부담 없이 들러볼 수 있는 점도 장점이죠.
카와고에는 '가장 효율적인 일본풍 인생샷'을 건지기에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역사 탐방이나 호젓한 로컬의 삶을 기대한다면 다소 상업적 농도가 짙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접근성, 풍부한 먹거리, 사진 찍기 좋은 풍경을 모두 갖춘 곳이 바로 카와고에입니다. 도쿄 여행 중 하루쯤은 번잡함을 뒤로하고 일본의 옛 모습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면, 우리나라의 민속촌에서 즐거움을 느끼셨었다면 주저 없이 카와고에행 기차에 몸을 실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