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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스 여행 (접근성, 볼거리, 맛집)

by 리얼트래블 2026.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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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스 해변 전경

 

바르셀로나를 여러 번 다녀온 여행자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이번엔 바르셀로나 말고 근교 어딘가를 가볼까?" 저도 정확히 같은 이유로 세 번째 바르셀로나 방문에서야 처음으로 시체스(Sitges) 행 기차를 탔습니다. "영화제 도시"라는 수식어 때문에 왠지 축제 기간에만 빛나는 곳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가보니 정말 그것은 그저 선입견일 뿐이었습니다.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정말 가볼만한 곳이었어요.

접근성: 40분이면 닿는다는 말, 진짜일까

일반적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시체스는 "기차로 40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이건 사실입니다. 바르셀로나 산츠(Sants) 역에서 R2 Sud 광역철도(Rodalies)를 타면 됩니다. 광역철도란 도심과 근교를 연결하는 통근형 열차로, 우리나라의 수도권 전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요금은 편도 4.90유로, 열차는 15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사전 예매 없이 당일 현장에서 표를 사도 됩니다.

단,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열차가 꽤 붐빕니다. 제가 탔던 토요일 오전에는 해수욕 장비를 든 현지 가족들로 통로까지 가득 찼습니다. 좌석을 원한다면 이른 시간 출발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지중해 해안선이 펼쳐지는 구간이 있는데, 그 풍경 자체가 이미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시체스역입니다.

역에서 내리면 올드타운(Old Town)을 가로질러 해변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짐을 끌고도 부담 없는 거리입니다. 접근성 하나만큼은 바르셀로나 근교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볼거리: 박물관 콤보 티켓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시체스의 볼거리라고 하면 흔히 산 바르톨로메 이 산타 테클라 성당(Parròquia de Sant Bartomeu i Santa Tecla)이 먼저 꼽힙니다.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선 바로크(Baroque) 양식의 성당인데요.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스타일로 화려한 장식과 극적인 규모감이 특징입니다. 이 성당은 시체스의 비공식 랜드마크로, 성당 앞 계단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전망은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압도적입니다.

팔라우 데 마리셀(Palau de Maricel)은 미국 사업가 찰스 데어링(Charles Deering)의 저택을 개조한 공간으로, 지금은 가이드 투어로만 입장 가능합니다. 저는 오전 10시 영어 투어를 들었는데, 옥상 회랑(Claustro)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열린 이 구조물은 실제로 보면 한참 멍하게 서 있게 되는 공간이었어요.

팔라우 투어와 함께 구입할 수 있는 콤보 티켓에는 카우 페라트 박물관(Museu del Cau Ferrat)과 마리셀 박물관(Museu de Maricel) 입장권이 포함됩니다. 시체스를 예술가들의 도시로 키운 화가 산티아고 루시뇰(Santiago Rusiñol)의 작업실이자 자택이었던 카우 페라트는 고대 도기부터 근현대 회화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제가 직접 돌아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페인 지방 소도시 박물관이라고 얕봤다가, 전시 구성의 밀도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시체스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예술·문화 도시라는 사실은 카탈루냐 관광청(출처: Visit Catalunya)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콤보 티켓 구매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팔라우 데 마리셀 가이드 투어: 영어 투어는 하루 1회(비수기 기준 오전 10시), 사전 일정 확인 필수
  2. 카우 페라트 박물관: 자유 관람 가능, 개인 페이스로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음
  3. 마리셀 박물관: 중세 종교 미술 중심, 관심사에 따라 체감 만족도 차이가 큼

박물관 투어를 강조하는 시각도 있지만, 제 경험상 꼭 모든 곳을 다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카우 페라트 하나만 제대로 봐도 반나절이 넉넉히 갑니다.

맛집: 검증된 타파스 바가 진짜인지 확인해봤습니다

시체스의 맛집 정보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엘 카보(El Cabo)입니다. 베르무트(Vermut)로 유명한 스페인식 바인데, 베르무트란 허브와 향신료를 더한 강화 와인으로 식전주로 즐기는 것이 스페인의 일반적인 문화입니다. 엘 카보는 시체스 타파스 축제(Tapa a Tapa Festival)에서 수차례 최우수상을 받은 곳으로, 수상 당시의 타파스를 지금도 메뉴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가봤는데, 늦으면 서서 먹어야 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저녁 7시 오픈과 동시에 입장했는데도 8시가 지나자 입구까지 사람이 찼습니다. 파타타스 브라바스(Patatas bravas, 매콤한 소스를 얹은 튀긴 감자)와 가지 튀김에 꿀을 뿌린 메뉴가 특히 좋았습니다. 베르무트는 잔이 아니라 거의 파인트 수준으로 나오는 엘 캅리초(El Capricho)에서 마셔봤는데, 바스크(Basque) 지방의 핀초(Pintxo) 바 방식으로 셀프 서빙 후 계산하는 구조가 낯설고도 재미있었습니다.

탄토 구스토(Tanto Gusto)의 엠파나다(Empanada)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엠파나다란 고기나 채소 등의 속 재료를 밀가루 반죽에 넣고 구운 남미·이베리아 반도의 전통 음식입니다. 주문하면 미리 만들어둔 것을 바로 오븐에 넣어 데워주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뜨끈한 상태로 나옵니다. 채식 옵션도 여러 가지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스페인에 왔으면 스페인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고집은 사실 필요 없습니다. 시체스에는 멕시칸 레스토랑부터 이탈리안 피체리아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포카(Foc)의 화덕 피자는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라 부담 없이 들어가기 좋습니다. 시체스 국제영화제(출처: Sitges Film Festival 공식 사이트)가 매년 이 도시에서 열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식도락과 문화가 공존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감하게 됩니다.

솔직한 총평: 시체스는 당일치기로 충분할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루 만에 주요 스폿을 훑는 것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시체스의 진짜 매력은 파세이그 마리팀(Passeig Marítim), 즉 해변 산책로를 따라 4킬로미터를 아무 목적 없이 걷다가 치링기토(Chiringuito)에 앉아 커피 한 잔 시키는 그 여유로움에 있습니다. 치링기토란 해변가에 설치된 간이 카페나 바를 뜻하며, 시체스의 치링기토는 계절에 따라 자리가 달라집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박물관 콤보 티켓을 소화하고 유명 맛집을 체크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도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채워지는 곳입니다. 골목을 걷다 마주친 꽃 장식 발코니, 광장에서 카스텔레르(Castellera, 인간 탑 쌓기)를 연습하는 현지인들, 낯선 이방인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네는 카페 주인. 이런 순간들이 기억에 더 오래 남았습니다.

시체스를 고민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바르셀로나 일정에 하루를 더 붙이거나, 아예 시체스를 거점으로 삼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시길 바랍니다. 그 40분의 이동이 여행 전체의 밀도를 확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념하기 위해 시체스 티셔츠도 하나 사왔답니다. 여러분도 꼭 가보세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3_Sb95C9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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