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패딩턴역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바스(Bath)는 로마 유적과 조지안 건축이 공존하는 세계문화유산 도시입니다. 저는 이곳을 10번 넘게 방문했지만, 매번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로마 목욕탕을 필수 코스로 추천하는데, 제 경험상 진짜 바스의 매력은 조금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 센터에서 만나는 시간 여행
제인 오스틴 센터(Jane Austen Centre)는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체험형 문화 공간입니다. 여기서 조지안 시대(Georgian Era)란 1714년부터 1830년까지 영국을 다스린 조지 1세부터 4세까지의 통치 기간을 말하며, 영국 문화와 건축이 꽃피운 황금기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기의 의상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저는 한국의 경복궁 한복 체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교하게 재현된 드레스와 코르셋, 모자까지 갖춰 입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특히 여성 관광객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센터 내부에서는 약 20분간 당시 의상을 입은 배우가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연기하는 공연이 진행됩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공연이 끝난 후 전시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전시 관람에는 20~30분 정도 소요되며, 제인 오스틴의 작품 속에 바스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출처: Visit Bath).
로열 크레센트 잔디밭이 주는 평화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는 1767년부터 1774년 사이에 건축된 반원형 건축물로, 30채의 주택이 연결된 거대한 조지안 양식 건축물입니다. 여기서 조지안 양식(Georgian Architecture)이란 균형과 대칭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당시 상류층의 우아함과 질서를 상징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데, 저는 로열 크레센트 앞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장 추천합니다. 드넓은 초록빛 잔디 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으면 런던의 번잡함이 완전히 씻겨 나가는 기분입니다.
특히 날씨 좋은 날에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울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천진난만한 모습,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잔디에 누워 낮잠을 자는 연인들까지. 이 평화로운 풍경이야말로 제가 바스를 10번 넘게 방문한 이유입니다.
로열 크레센트 모퉁이에 위치한 넘버 원 로열 크레센트(No. 1 Royal Crescent)는 18세기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박물관입니다. 모든 방이 당시의 가구와 벽지로 꾸며져 있으며, 주인 가족과 하인들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가 다소 비싼 편이지만, 건축과 역사에 관심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입니다.
바스 온천, 기대와 현실 사이
바스라는 이름 자체가 '목욕'을 뜻할 만큼, 이 도시는 로마 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했습니다. 로마 목욕탕(Roman Baths)은 서기 70년경 로마인들이 건설한 유적으로, 매일 약 240,000갤런(약 90만 리터)의 온천수가 지하에서 솟아오릅니다(출처: Roman Baths).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찜질방 문화에 익숙한 저에게 영국 온천은 시설 면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제법 비싼 편인데, 한국처럼 때를 밀거나 사우나를 즐기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반드시 수영복을 착용해야 하며, 남녀 구분 없이 공용 탈의실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나오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의 목욕 문화를 직접 경험해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특히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치유와 감동'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 있으니, 적절한 기대치 조절이 필요합니다.
로마 목욕탕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는 상당히 충실한 편입니다. 최소 2시간은 잡아야 전시물과 유적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주 서판(Curse Tablets)'이라는 독특한 유물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자신의 소원이나 저주를 납판에 새겨 온천에 던진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삶과 믿음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정리하자면, 바스는 박물관과 유적지를 채우는 여행보다는 그 도시의 분위기와 평화를 느끼는 여행지입니다. 로열 크레센트 잔디밭에서의 여유로운 시간, 제인 오스틴 센터에서의 색다른 체험, 그리고 조지안 건축물 사이를 거니는 산책이 진짜 바스의 매력입니다.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으니,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영국 시골의 우아함을 느끼고 싶다면 바스만큼 완벽한 선택지는 없을 것입니다. 기차표는 최소 2주 전에 미리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