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저는 거의 뛰다시피 돌아다녔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사진 찍고, 람블라스 거리를 훑고, 구엘 공원 줄을 서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여행을 하는 건지, 체크리스트를 지우는 건지. 두 번째로 그 도시에 다시 섰을 때 그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같은 도시를 두 번 가는 건 낭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아직 못 가본 곳은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여행에서야 비로소 그 도시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이 아니라는 마음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움직입니다. 그래서 피곤해도 더 걷고, 배가 불러도 한 군데를 더 들르고, 결국 여행이 끝날 무렵엔 몸은 지쳐 있고 기억은 오히려 뭉개져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두 번째 바르셀로나는 달랐습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라는 마음이 생기자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골목에 들어가도 되고, 카페에 앉아 한 시간을 보내도 됩니다. 그 여유가 오히려 더 깊은 여행을 만들어줬습니다. 여행을 여행답게 즐기게 된다는 게 이런 감각인 것 같습니다.
도시는 변하고, 저도 변해 있습니다
베이징을 2008년 올림픽 전후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올림픽 전에는 거리 곳곳이 낡고 먼지 냄새가 났습니다. 골목 시장에서 흥정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간 베이징은 전혀 다른 도시였습니다. 길이 넓어지고 건물이 반짝거렸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베이징이 아니었습니다.
도시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그리고 저도 달라져 있습니다. 같은 광장에 서도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빈티지 카메라로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 같은 골목도 찍는 사람의 눈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첫 번째엔 명소, 두 번째엔 일상
바르셀로나를 세 번 다녀왔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여행의 결이 달랐습니다.
- 첫 번째: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람블라스 거리 — 교과서 같은 여행
- 두 번째: 시체스, 몬세라트 같은 주변 소도시로 반나절 기차 여행
- 세 번째: 현지인들이 가는 재래시장, 동네 타파스 바, 이름 없는 공원에서 낮잠
세 번 다 다른 여행이었습니다. 같은 도시인데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특히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바르셀로나 사람처럼 앉아 있던 그 오후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찍은 사진보다 훨씬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화담숲을 봄마다 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
굳이 해외까지 가지 않아도 이 감각은 익숙합니다. 화담숲 벚꽃이 예뻐서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쁘니까 또 갑니다. 서울을 처음 간 사람처럼 매번 다르게 경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도 같은 여행지를 계절을 달리해 방문하는 '재방문 여행'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같은 비용으로 처음 가는 낯선 도시를 허겁지겁 훑는 것과, 이미 익숙한 도시에서 제 속도로 움직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진한 여행이 될지는 해봐야 압니다. 저는 두 번째 쪽이 훨씬 많이 남더라고요.
두 번째 여행은 첫 번째 여행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도시든 첫 방문은 다음 방문을 위한 준비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될 것 같은 도시가 하나쯤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다시 가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처음과는 전혀 다른 도시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낯섦과 익숙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감각이, 여행이 주는 가장 독특한 선물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같은 도시를 두 번 가면 실망하지 않나요?
A. 첫 방문과 다른 기대치로 가면 실망보다 발견이 많습니다. 명소 대신 골목, 유명 식당 대신 동네 카페를 목적지로 삼으면 전혀 다른 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Q. 두 번째 여행 일정은 어떻게 짜는 게 좋을까요?
A. 첫 번째에 못 간 주변 소도시 한두 곳을 넣고, 나머지는 느슨하게 비워두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빡빡한 일정은 두 번째 여행의 장점을 반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Q. 바르셀로나 주변 소도시 중 어디가 좋을까요?
A.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시체스는 한적하고 해변이 예쁩니다. 몬세라트는 산악 수도원 풍경이 독특합니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모두 적당합니다.
Q. 도시가 너무 변해서 실망한 경우는 없었나요?
A. 베이징처럼 완전히 달라진 도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 자체가 그 도시의 현재를 보여주는 기록이 됩니다. 실망보다는 시간을 목격했다는 감각이 더 강했습니다.
Q. 재방문 여행도 처음처럼 설레일 수 있을까요?
A. 처음의 설렘과는 다르지만,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설렘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쪽이 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